솔직히 저는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서 그 주인공이 실제 역사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동생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척준경이라는 이름이 그 시작이었는데, 그 이후로 역사 속 영웅들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고려의 척준경부터 중동의 살라딘까지, 극한의 전장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척준경, 도깨비의 모티브가 된 고려의 무신
집에서 도깨비를 다시 보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공유가 나오는 장면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동생이 들어오더니 봤던 거 또 본다고 핀잔을 줬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가 먼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드라마, 실제로 모티브가 된 사람이 있는 거 아니야?" 역사에 해박한 동생이 바로 대답해 줬습니다. 척준경이라고요.
직접 찾아보니 척준경은 황해도 곡산 출신으로, 글을 전혀 몰랐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윤관의 여진 정벌, 즉 고려 예종 때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은 대규모 군사 원정에서 뛰어난 무공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여기서 여진 정벌이란 1107년(예종 2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이루어진 고려군의 북방 원정을 말합니다. 당시 윤관이 이끄는 고려군은 여진족의 거점을 공략하고 동북 9성을 설치했는데, 척준경은 이 전쟁에서 부장으로 참전했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윤관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였습니다. 척준경은 결사대 10명을 이끌고 적진을 정면으로 뚫어 윤관을 구출해냈습니다. 감격한 윤관은 척준경을 양자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일화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충의를 실천한 장면이라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후반부 행적입니다. 척준경은 당대 최고의 무신으로서 이자겸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이자겸의 난(1126년)이란 외척 이자겸이 인종을 폐위하고 스스로 권좌에 오르려 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인종이 직접 척준경을 설득하자, 척준경은 결국 이자겸을 배신하고 왕 편에 섰고, 이 선택이 이자겸 몰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이후 척준경은 탄핵을 당해 쓸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일각에서는 척준경이 이자겸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글도 모르던 무신이 최고 권력자 옆에 서고, 그 권력자를 결정적인 순간에 배반해 왕을 살렸다는 것은 단순한 무뇌 충성이 아니라 나름의 처세술이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보며 느꼈던 도깨비 주인공의 비극적 충성심이, 이 인물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드라마가 완전히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척준경은 글을 모르는 무인 출신으로, 순전히 무공으로 윤관의 핵심 부장이 되었습니다
- 결사대 10명으로 포위된 윤관을 구출한 일화는 한국사 무용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 이자겸의 난 당시 왕 편에 선 결정은 그를 공신으로 만들었지만, 이후 탄핵으로 이어졌습니다
- 한국사 무력 순위 1위, '한국의 유일한 소드마스터'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라딘, 적도 인정한 중동의 전략가
척준경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에서도 전설적인 군사 지도자가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살라딘입니다. 본명은 유수프이며, '살라딘'은 아랍어로 '구원의 왕'을 뜻하는 호칭입니다. 여기서 '살라'는 정의 또는 명예를, '딘'은 신앙 혹은 종교를 의미합니다. 즉 살라딘이란 이름 자체가 "신앙의 정의를 실현하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살라딘은 아랍인이 아니라 쿠르드족 출신입니다. 쿠르드인들에게 그는 지금도 최고의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습니다. 그가 세운 아이유브 왕조는 이집트를 거점으로 팔레스타인, 시리아까지 세력을 뻗었으며, 이집트 국기 속 독수리도 바로 '살라딘의 독수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살라딘의 독수리란 아이유브 왕조의 문장으로 사용되던 독수리 문양을 말하며, 현재 이라크, 팔레스타인, 예멘 등 아랍 여러 나라의 국장에도 동일하게 쓰이고 있습니다(출처: CIA World Factbook).
제가 살라딘에게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부분은 무력이 아니라 관용이었습니다. 1187년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살라딘은 도시 주민들을 학살하지 않고 살려 보냈습니다. 이것은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무슬림과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관용 덕분에 그는 적국인 기독교 세계에서도 기사도의 표상으로 기억됩니다.
3차 십자군 전쟁에서 맞선 리처드 1세와의 일화도 눈길을 끕니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이 없었지만 서신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깊이 존중했습니다. 리처드 1세가 병에 걸렸을 때 살라딘이 의사와 과일, 와인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물론 살라딘도 리처드 1세가 무슬림 포로 3천 명을 처형하자 십자군 포로를 처형하는 냉혹한 면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웅이라고 해서 전쟁의 잔인함을 피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라딘이 이집트를 시아파에서 수니파 국가로 전환시킨 것도 중동 역사에 길게 남은 사건입니다. 여기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구분이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의 차이에서 비롯된 분파를 말합니다. 이 종파 전환은 현대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척준경이 한 시대의 무력을 상징했다면, 살라딘은 무력과 외교와 관용을 함께 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제 눈에는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드라마 도깨비 주인공이 척준경을 모티브로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공식적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고려 시대 무신으로 왕에게 충성하다 비극적 말년을 맞은 척준경의 행적이 도깨비 주인공 김신과 여러 모로 겹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제가 직접 두 인물을 비교해보니 억울한 최후와 뛰어난 무공이라는 공통점이 꽤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Q. 척준경이 한국사 무력 순위 1위라는 근거가 있나요?
A. 공식 순위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역사 커뮤니티와 사학 팬덤 사이에서 회자되는 비공식 평가입니다. 단, 홀로 적진을 뚫고 총사령관을 구출하거나 영주성을 단독으로 지켜낸 기록들이 고려사에 실제로 남아 있어 그 무공의 실재성만큼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Q. 살라딘은 아랍인이 아닌가요?
A. 의외로 살라딘은 아랍계가 아닌 쿠르드족 출신입니다.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 태어나 이집트와 시리아를 무대로 활약했습니다. 쿠르드인들은 지금도 살라딘을 자신들의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여기며,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의 주도 이름 역시 '술라이마니야'가 아닌 지역마다 다르지만 살라딘의 이름을 딴 주(州)가 이라크에 존재합니다.
Q. 이집트 국기에 독수리가 들어간 이유가 살라딘 때문인가요?
A. 맞습니다. 살라딘이 세운 아이유브 왕조의 문장이 독수리였고, 이것이 '살라딘의 독수리'로 불리며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권 여러 나라의 국장에 계승되었습니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예멘도 같은 독수리 문양을 국장으로 사용하고 있어, 살라딘의 상징이 현대 중동 국가 정체성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
동생에게 한 마디 질문을 던진 날부터 척준경과 살라딘을 찾아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보니 알면 알수록 이 두 인물은 단순히 싸움을 잘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척준경은 글도 몰랐지만 전장에서 몸으로 충의를 증명했고, 살라딘은 적에게도 관용을 베풀며 전략가로서의 품격을 보여줬습니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영웅은 전쟁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제 경험상 진짜 기억에 남는 인물들은 대부분 전쟁을 피하거나 끝내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었습니다. 살라딘이 예루살렘에서 보여준 관용이 80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것처럼, 우리가 기억하는 영웅의 조건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빨리 세계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